정부는 2013년 12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의료법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자회사를 통해서 숙박, 여행, 체육시설, 의료기기 및 의약품 개발, 판매, 화장품 판매 등의 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에 의료법인은 병원 내 매점, 산후조리원, 영안실, 주차장 등의 제한된 영역 외에는 다른 수익사업을 할 수가 없었기에 의료법인 입장에서는 수익구조가 크게 개선될 수도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를 의료민영화(또는 의료보험 민영화)와는 전혀 별개의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건 의료보험 민영화와는 전혀 별개가 맞긴 맞다.


그러면 왜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의료노조, 그리고 시민단체에서는 결사적으로 이를 반대할까?


우선 두 가지의 용어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생길 것이므로 용어부터 정리하면...


건강보험당연지정제 :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병의원이 건강보험환자 진료를 해야 하도록 지정한다는 의미. 즉,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 병의원은 없다는 것


의료법인 :

시도지사의 허가에 의해 설립되는 비영리법인으로, 우리나라 전체에 900개에도 미치지 못함.

동네의원이나 중소규모의 병원들은 거의 의료법인에 해당이 되지 않으며, 대형 병원은 학교법인, 공사 소속 또는 의료법인이라고 보면 됨. 

부채비율, 부지 면적 등을 포함하여 설립 요건이 상당히 까다로우며, 점차로 설립 요건은 더 강화되고 있음.



먼저 우리나라 의료보험에 대해서 알아보면...


의료보험당연지정제가 필수이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모든 병의원은 건강보험공단과 게약을 통해 건강보험환자를 진료해야 한다. 즉, 의료보험 환자를 받지 않으면 불법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다음으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저수가, 저보장 위주로 돌아가고 있으며, 고가의 검사나 상급병실료 등의 비급여 항목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병의원이 적자를 보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보험 위주의 외과계열이나 산부인과에 전공의 지원이 없는데,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 등의 과에는 지원자가 넘쳐날까?

(물론 잘 나가는 산부인과 예를 들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분들이 부자가 된 이유는 산후조리원과 비급여 항목인 산전초음파 등의 특수검사 덕분이지 정상적인 분만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중산층 이상은 많은 수가 건강보험료 외에도 의료실손보험을 통해 민간보험에도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한다면, 10여 만원의 건강보험과 함께 20만원 정도를 사보험을 통해서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암보험, 실비보험, 실손보험, 의료보장보험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여기서 다시 의료법인의 민영화 (또는 정부가 말하는대로 약간의 영리사업 허용)에 대해서 알아 보자.


정부가 영리사업을 허용하는 목적은 저수가 체계에서의 병원들의 적자 해소 및 외국 환자의 유치에 주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먼저, 여행, 숙박업을 통해서 900개의 의료법인이 환자를 유치한다면 부유층 환자의 블랙홀이 될 것이다.

과연 외국 환자의 유치만을 위해서 이를 이용할까?

병실보다 안락한 호텔방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좋아할 국민은 과연 몇 퍼센트이며, 이용 가능한 국민은 몇 퍼센트나 될까?


다음으로, 의료기기나 의약품의 거래에도 직접 뛰어든다면, 모체가 되는 병원과의 유착 관계, 불투명한 회계처리, 독과점적인 지위 확보 등에 대한 대책은 있을까?

특히나 신약이나 신의료기에 대한 독점적 위치를 확보하는 공룡같은 의료법인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수영장이나 헬스클럽과 같은 치료용 체육시설을 만들고 병원의 물리치료보다 몇 십배의 비용을 지출하면서  이용하게 만들지 않을까?

당연히 건강보험의 영역은 아닐테고, 사보험에서 이 비용까지 어느 정도 커버를 해 준다면 향후 건강보험은 껍데기만 남고 사보험 시장이 활황이 될 것이다.


치료용 화장품을 판매한다면 건강보험에 등재된 약을 처방하는 것보다 몇 십배의 이익을 취할 수 있을테고, 자꾸자꾸 사보험의 영역은 커져 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결국은 건강보험의 고사 및 영세 병의원의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서는 참 희한한 적자 보전책이다. 서민들은 껍데기 뿐인 건강보험 틀 안에서 치료받아야 할테고... 점점 더 그 껍데기조차 누더기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커져 가는 사보험 시장 속에 본격적인 의료 민영화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느낌은 대한의사협회, 보건의료노조만의 호들갑일까?


이렇게 적자를 해결해 주겠다는 대책을 내 놓고도 욕을 들어먹을 때는 분명 뭔가 잘못된 대책임을 빨리 깨달아야 할텐데...



툭 까놓고 의사들이 먹고 살 길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 보면...

 

정부가 인정하는 것처럼 (심사평가원 조사) 지금 건강보험 수가는 원가의 75%밖에 되지 않는다.

이걸 현실화시켜 달라는 것이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다.

그러나 정부는 적자 보전을 위해서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에 자회사 설립을 통한 영리사업을 허용하겠다는 것인데, 고작 900개도 안 되는 의료법인에 혜택을 주면서 동네 의사들은 더욱 어렵게 하는 이 제도를 어느 동네 의사가 찬성할까?

 

그 마음은 잘 안다. 보험수가 인상은 보험료의 인상과 직결되는데, 국민들에게 차마 입이 안 떨어질거다.

대신 의료법인에게 장사를 마음대로 하라고 전을 펼쳐 주는거지...

 

차라리 현재의 기형적인 보험제도에 대해서 솔직히 고백하고 건강보험료를 조금 더 내더라도 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면 국민들도 납득할 것 같은데, 재벌 보험사는 상당히 싫어할 것 같다.


 

아뭏든 나는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서 병의원에서 적자나는 것 화장품 팔아서 메꾸고 싶진 않다.

내가 배운 의술로 적당한 가치를 받고, 우리 직원들 월급 주면서 일하고 싶을 뿐...

차라리 먹고 살기 힘들 때 내가 좋아하는 커피점을 차리는 것이 (물론 이 또한 희박하다만) 병원에서 화장품 파는 것보다는 훨씬 승산도 있으면서 덜 부끄러울 것 같은데...

더이상 의사들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환자들 불쌍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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