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평생을 건강히 잘 살았다고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던 회갑이라는 행사는 이제 좀 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조선시대 평민들의 평균 수명이 40세, 임금들의 평균 수명이 44세였다고 하니까 당시에는 60세까지 산다는 것이 대단한 축복이었겠지만, 오늘날의 평균 수명은 나날이 늘어나 우리나라 1971년생의 기대 수명이 남자는 91세, 여자는 96세라고 하니 이제 백평생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생기는 문제점도 없지는 않으니, 그 중에는 노후의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한 노년 생활에 대한 문제들,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도 정복되지 못한 치매를 가장 중요한 질병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역사학자 크소포논이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무뎌지고 배우는 속도가 느려진다”고 한탄했다는 자료와 구약성서 전도서에 “아이든 아버지가 기억력이 떨어지더라도 화내지 말라”고 아들에게 가르치는 대목에서 보는 것처럼 6,000년 전부터 치매에 대한 증상들은 잘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치매는 나이가 들면 당연히 생기는 증상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부에서만 생기는 병적인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치매는 그 종류가 다양하여 나타나는 증상들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게 되지만,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거의 모든 치매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증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도 계산력의 장애,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인지능력의 저하, 성격 및 감정의 변화, 적절한 표현 능력의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생활, 가정생활의 장애를 보이게 되며, 점차로 진행하면 밤낮이 바뀌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며, 눈에 헛것이 보이거나 헛소리가 들리는 증상들도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고, 어떠한 의사 표현도 못 하는 상황에서 침상에 누워서만 지내게 된다.

몇 가지 종류의 치매는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를 시작하면 완치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불행히도 아직 대부분의 치매는 병을 완치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다만 병의 진행을 완화시키는 약제들은 많이 개발이 되어 있는 상태이고, 특히나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더욱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혹시나 치료가 가능한 치매는 아닌지에 대한 충분한 검사가 필요하며, 비록 완치가 불가능한 경우라도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치매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도 낮은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치매의 조기 발견을 위해서 정부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신경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도 굉장히 괜찮은 나라라는 생각은 들지만, 조기발견, 조기치료가 정부와 신경과학회, 치매학회 등 유관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는 없으므로 가족들의 관심이 각별히 필요하다.


도대체 왜 치매 환자들의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나름 판단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아직도 치매를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생기는 현상으로 생각하고 그냥 방치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고, 두 번째는 치매의 증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이 치매에 대해서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몇 가지만 언급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최근의 가까운 기억이 소실되었지만 과거의 일을 잘 기억하는 것을 단순한 건망증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 증상의 경우 최근의 기억들, 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면서도 과거 기억은 기가 막히게 잘 보존이 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두 번째로 어르신들의 성격 변화를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치매의 진단을 늦추는 요인이 된다. 예를 들면 우울한 기분을 많이 느끼는 경우에도 부부가 사별하거나 자식들을 출가시키거나 직장에서 은퇴한 일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면서 치매의 증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작은 변화들만 빨리 알아차린다면 조기에 치매 치료를 시작해서 보다 오랜 기간동안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실 수 있는 환자들이 많은데, 사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상당히 병이 진행한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신경과 의사로서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솔직히 보호자들이 참 밉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추석이 지났다. 난 고향에 가서 몇 달만에 뵙는 양가 부모님들과 대화하면서도 직업병처럼 뭔가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를 살펴 보았다. 물론 부모님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사실 자식들이 치매가 의심스러우니 병원을 가 보자고 말씀드리면 부모님들의 거부반응은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가족들은 혹시 대화 도중 조금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파악하고 혹시나 치매에 대한 약간의 의심이라도 생기면 어떤 다른 병에 대한 핑계로라도 병원으로 모시고 오시면 된다.
환자가 치매에 대한 검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은 의사의 몫이니...



치매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한 가지..
대한민국은 치매 치료에 있어서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많은 경우 치매 약제비는 1년에 30만원까지 정부에서 지원이 되므로, 가족들의 부담은 거의 없다는 사실!!  


  - 강남병원 신경과 이상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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