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전 아들과 함께 할머니 한 분이 찾아 오셨다.

열흘 정도 전부터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많이 하고, 밤에 이상한 행동을 하신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보호자가 보기에는 온전한 모습이셨다고 하는데, 갑자기 치매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경과 진료실을 찾아 왔다는데...


대개 이런 경우는 치매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환자는 당뇨병과 고혈압증, 기관지 천식 등으로 약물을 복용 중이었다고 한다.

우선 신경학적 검사에서는 특이한 소견이 없다.
뇌신경 검사도 정상, 팔다리 힘도 정상이고, 감각도 정상, 소뇌 기능도 정상이었다.

일단 뇌졸중의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최근에 날씨가 추워지면서 기관지 천식약을 임의로 다소 증량했다고 한다.

그 외 병력에서는 특이 사항이 없다.

소변검사도 정상이었으며, 특별히 허리나 골반을 포함한 다른 곳의 통증도 없었다.



이 환자는 치매가 아닌 섬망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기관지 천식 약을 적당히 조절을 하고, 수일간 경과 관찰을 하였는데...
환자의 이상 행동은 사라졌다.


섬망이란?

섬망은 갑작스럽게 이상한 행동과 망상, 환각과 함께 대개는 과다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인데,
큰 뼈의 골절이나 요로감염, 약물, 고열, 탈수 및 전해질 이상 등에 의해서 많이 생긴다.

그리고, 원인 질환들을 해결해 주면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어르신들에게서는 근이완제, 심장약, 천식약, 감기약 등이 섬망을 잘 일으키는 약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철에는 특히나 천식약, 감기약 등에 의해 섬망이 잘 발생되는 경우가 허다하며, 자칫 오래 방치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병이다.

따라서 그냥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현상으로 생각하고 방치하다 보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치매보다는 훨씬 더 빠른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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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더 위험하다?

아니죠...
고혈압이 훨씬 위험합니다.
저혈압이 위험한 경우는 갑작스럽게 쇽 상태가 온다거나 과다출혈로 인해 피가 모자라는 경우 등에 국한됩니다.
평소에 혈압이 다소 낮은 경우 전혀 위험하지가 않습니다.


2. 손이 저리면 피순환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드물게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말초신경장애, 손목에서 인대가 굵어져서 신경을 압박하는 손목굴증후군, 목디스크 등에 의한 경우가 훨씬 많답니다.
이제 손이 저리다고 엉터리로 진단하고 혈액순환제는 드시는 것은 그만~~


3. 어지러운 것은 빈혈때문이다?

드문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니 어지럽다고 철분제를 사서 드시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어지럼증의 원인은 귀, 머리 등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요즘은 영양상태들이 좋으셔서 빈혈에 의한 경우는 점점 더 줄어 들고 있습니다.


4. 뒷목이 뻣뻣하면 고혈압? 또는 뇌졸중의 시초?

앞서서의 다른 잘못 알고 있는 경우보다는 낫기는 합니다.
큰 병을 걱정하시면 그나마 병원은 찾아 오실테니까 말이죠...
그러나, 혈압 문제는 뇌졸중 문제보다는 경추(목뼈) 문제나 그 주위 근육의 문제가 몇 백 배는 더 많을 것 같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상상 속에서 병을 키우시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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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참 편리한 세상이 왔다.
내가 궁금해 하는 정보는 간단히 검색어를 입력하면 전문가 수준의 검색이 모두 가능하니까 이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이런 정보의 발전은 의사들에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어느 신경통 환자 이야기

실제로 심한 신경통 환자의 예를 들어 보자.
통증의 조절을 위해서 내가 에나폰과 테그레톨이란 약을 환자에게 처방했다면...
약 봉투에는 환자가 처방받은 약물들이 적혀 있다.
무슨 약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약 이름을 쳐 본다면...
에나폰은 항우울제로 분류되어 나올 것이고,
테그레톨은 항경련제(간질 약)로 분류되어 나올 것이다.

이 무슨 경우인가?
신경통으로 병원을 갔더니 왜 나를 우울증 환자로 만들고 간질 환자로 만든단 말인가?

환자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울트라셋이라는 진통제를 처방했다면...
환자는 검색을 해 본 후 자신을 암환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암성 통증에 사용하는 약이라고 적혀 있을테니까...)

나는 이런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이러저러한 약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처방한다고 미리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두통 환자들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런 설명은 꼭 필요하다.


하나하나 짚어 줄 수는 없는 복약안내서, 그리고 복약지도, 그 후폭풍...

그런데, 약국에서 복약지도라는 명분으로 약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이, 궁금증에 대해 처방을 한 의사에게 문의도 없이 무성의하게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약 설명을 프린터해서 나눠 주는 경우도 보았다.
이 설명서에는 친절하게도 약의 사진까지 나와 있다.

환자들은 꼼꼼히 설명서를 읽은 후 콩 빼 먹듯이 자신이 먹고 싶은 약만 골라서 먹기도 한다. 

그러고선 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약을 처방했냐고 따지거나 또는 약을 먹어도 전혀 낫지 않는다고 불평도 한다.
어느어느 병원에서는 이렇게 약을 처방하더라고 카페같은 곳에 공개를 하기도 한다.


Rapport란? 그리고 위약(placebo)이란?

인간간의 관계 형성을 우리는 rapport라고 부른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 형성이 잘 된 경우에는 밀가루를 먹어도 병이 나을 수 있다.
이것을 위약효과라고 한다.

무성의한 복약지도와 정확하지만 일반적인 약품 정보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이제 어떻게 rapport를 형성해야 하나?
과거에 약 하나하나를 물어 보면서 혼자 조절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환자들에게는 가루약으로 처방을 내리곤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하면 뭔가를 숨기는 의사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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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 (혈관이 막히는 뇌졸중)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혈전성 뇌경색증 (혈관 한 부위에 점차 찌꺼기가 쌓이면서 발생)
2. 색전성 뇌경색증 (심장이나 경동맥 증에서 생긴 찌꺼기가 떠돌아 다니다가 작은 가지에서 막힘)

오늘 아침에 근처 내과의원 원장님으로부터 환자를 의뢰한다는 전화가 왔다.
갑작스런 팔다리의 마비 증상으로 내원한 할아버지인데, 뇌졸중 의심하에 의뢰한다고... 그리고, 구급차로 후송하려고 했으나 거절하고 그냥 걸어서 출발할만큼 고집이 센 분이시라고...

환자를 진찰하니 약간의 위약감이 있지만 거동은 가능한 상태였으며, 역시나 고집이 만만치가 않았다.
완강히 거부하는 환자를 설득해서 MRI를 촬영하였는데...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이 뇌경색이 온 부분이다.

이 사진 외에도 다른 부분에 좌우 양측에 걸쳐서 두 군데의 뇌경색 소견이 보였는데, 이런 경우 심장에서 떨어진 혈전이 다발성으로 머리에 가서 막혀 버리는 색전성 뇌경색증을 강력히 시사하는 소견이 된다.

추가로 심장 검사, 목 혈관 검사도 받아야 하고, 반드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막무가내로 집으로 갈 것을 고집하고 계신다.

참으로 난감한 경우이다. 병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해 드려도, 완전히 마비가 오면 본인과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고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로 거부하시니 이거 더이상 나로서는 방법이 없다.

마지막 방법으로 단골의사의 힘을 빌어 보기로 했다.
오랜 기간동안 이 환자를 돌보시다가 오늘 내게 의뢰해 주신 동네 의원 원장님 생각이 났다.

일단 환자분께는 원래 의뢰해 주신 병원에서 치료받으시라고 설명하고 그 병원으로  돌려 보낸 후, 원장님께 곧장 전화를 했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환자분을 다시 돌려 보내 드리니까 한 번 설득해 보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내 뜻을 이해하신 원장님께서는 직접 설득해서 꼭 우리 병원으로 다시 보내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못 해 낸 일을 틀림없이 해 주시리라 믿는다.

오랜 기간 환자들 근처를 지켜 주시는 수없이 많은 동네 의원의 원장님들이 계셔서 대한민국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작은 병에도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대학병원들만을 선호할까?

이웃 원장님과 함께 전개하는 환자 입원시키기 총력전에 반드시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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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불안증후군 (Restless leg syndrome)의 진단은 참 쉽다.

1. 다리의 감각 이상과 움직이고 싶은 기분
2. 안절부절못함
3. 증상의 악화가 움직임에 의해 잠시 완화됨
4. 주로 저녁이나 밤에 악화됨

이런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주로 다리에 나타나지만, 팔에도 나타날 수도 있고, 드물게는 팔에만 나타날 수도 있는 병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이 병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서 몇 년 간 엉뚱하게 많은 검사를 통해서 진단을 받지 못하고 진통제만 먹으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늘 내원한 남자 환자는, 7년간 다른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다가 한 달 쯤 전에 나를 찾아와서 프라미펙솔이라는 약을 복용 후 증상이 완전히 사라져서 하지불안증후군으로 확진한 환자인데...

신기하게도 이 환자는 모 대학병원에서 하지불안증후군에 가장 유용한 검사인 수면다원검사까지 시행했으나 진단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수면다원검사로 확인되는 경우가 80% 정도니까 검사에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도 20%나 된다.

어찌되었든 이 환자나 다른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내가 처방한 약을 먹고 환자가 나아졌으니 참 다행스럽고 뿌듯한 것은 사실이다만, 이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는 두 가지 갈등이 있다.


첫 번째 갈등
교과서적으로는 하지불안증후군의 치료약은 그야말로 증상에 대한 치료일 뿐 병의 경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므로 확진될 때 까지는 환자의 수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우 약물을 사용하지 않도록 적혀 있다.
그러나 나는 약물을 먼저 사용 후 그 효과를 보고 지속적인 약물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데...

과연 환자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수면에 얼마나 지장을 받는지를 교과서의 저자는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내가 하는 의료행위가 적절한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가 있다.

1주일 처방 후 밝아진 환자의 얼굴을 보면, 1주일간 잠을 푹 잘 잤다고 기뻐하는 환자들을 보면 잘 한 치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약간은 교과서와 어긋난 느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 병원에는 (비록 80%의 진단율밖에 안 되는 검사지만) 수면다원검사도 시행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애써 갈등을 잠재워 본다.


두 번째 갈등
대개의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들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다른 병원에서 엉뚱한 치료를 받던 분들이다.

많은 경우에 이전의 다른 치료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제야 올바는 치료 방법을 찾았다는데 대해 기뻐 하시지만, 가끔은 다른 병원의 치료에 대해 원망을 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런 환자의 원망을 십분 이해한다만, 다른 병원 선생님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나하면, 아직까지 다른 과 선생님들께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병인 관계로 치료에 반응이 없을 때 어디로 어떻게 의뢰해야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테니까... 그리고 나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을테니까...

이런 경우는 잘못 진단한 선생님들의 문제보다는 그동안 이 병에 대해 다른 주위의 선생님들께 설명을 하지 않은 우리 신경과 의사들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거 참 환자분들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갈등이 생기는 경우이다.

그저, "이 병은 제일 마지막에 본 사람이 명의가 되는 병입니다."라고 얘기하고 환자와 함께 한바탕 웃고 마는데, 뭐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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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약을 많이 먹으면 속을 버린다...
양약은 몸에 해롭다...

주위에서 흔히 듣는 얘기인데, 이 말이 과연 사실일까?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참 많이 잘 못 알고 있는 부분들도 많다.

몸에 좋다고 알려진 각종 음식들, 각종 음료들, 각종 건강보조식품들...
모두 과하면 좋을 것이 없는 것들이다. (한약은 잘 모르니까 언급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양약(신약)도 과하면 결코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신경과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약들 중 가장 중요한 약 세 가지만 언급해 보면...

뇌졸중, 심장질환 치료에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아스피린버드나무 추출물이고, 
혈류순환 및 말초신경개선에 효과가 있는 타나민, 징코민, 기넥신 등은 은행잎 추출물이다.
그리고,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는 레미닐수선화에서 추출한 약이다.

(사진은 은행잎이 잔뜩 떨어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어느 공원)

이렇게 식물에서 꼭 필요한 성분을 추출 또는 합성해서 만든 의약품이 어찌 식물을 직접 먹는 것보다 해로울 수 있을까? 꼭 필요한 성분만을 연구를 거듭해서 추출한 것이 의약품인데...

임의로 먹는 약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처방에 의해 정확히 복용하는 의약품은 약이지 독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왜 모를까? 누가 알려주지 않아서?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지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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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인터넷에서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평소에 내가 이름을 알고 있던 유명인이 아닌지라 궁금해 하면서 기사들을 검색했고, 그녀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아침마당과 같은 프로그램을 매일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지만, 병실 회진을 돌 때 가끔 볼 수 있는 TV에서 희망을 얘기하고 행복을 얘기하던 그녀의 모습을 많은 환자들이 즐겨 보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렇게 희망과 행복을 얘기하던 그녀를 무엇이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그렇다면 행복을 전파하던 그녀는 거짓말장이였을까?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 가입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며, 특히나 자살은 우울증이 있는 환자들에서 월등히 높게 발생한다.

노인층에서는 젊은 사람에 비해서 우울증의 빈도는 더욱 높아서 무려 30% 정도가 우울증 환자라는 조사까지 있은 실정인데, 노인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 또한 젊은 사람에 비해서 최고 5배까지 높다는 보고도 있다.
노인층에서는 신체의 기질적 질병이 있는 경우에 우울증이 더욱 많이 발생하는데, 뇌졸중, 치매, 간질, 파킨슨병, 말초신경병증을 포함한 각종 신경병증 등의 신경과 질환 뿐 아니라 심근경색 후, 호흡기 질환 등 내과적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우울증 유병률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노인층에서의 우울증 치료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우울증 치료는 일차 진료에 있어서의 약제 선택에 제약이 따르고 있는데, 이는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안전한 약제로 인정받고 있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 투여시 정신과 외의 다른 과에서는 60일 범위 내에서만 처방을 하도록 하며, 그 이상의 기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신과에 의뢰하도록 하는 보험 규정 때문이다.


아파 죽겠는데, 아파서 죽을 힘도 없는데...

이런말들은 신체적 질환이 있는 환자들로부터 무수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 아프면 정말 우울해진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삶에 의욕이 상실된다.
어쩌면 죽을 힘도 없다는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심장이 좋지 않았고, 폐에도 물이 차 올랐다는 그녀-
그녀는 신체의 통증으로 정신적 괴로움이 엄습해 오는 동안에도, 정말 병원에 갈 힘도, 죽을 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떠나는 글...

저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밧데리가 방전된거래요.
2년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려갔고 또한번의 절망적인 선고.
그리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 이상 입원해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 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라 생각합니다.
모든분들께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2010. 10. 7


그녀의 유서를 보면서 정신을 제압하는 신체적 고통의 크기를 느낄 수가 있다.

그녀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나는 알지를 못한다.

그러나 다시금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제도를 되돌아 보면...
가장 우수하고 효과적인 항우울제를 처방받기 위해서는 단골로 진료하는 병원 외에 폐에 물이 차올라서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환자들도, 뇌졸중이나 파킨슨병으로 10m를 걸어 가는데도 1분이라는 시간 이상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도 힘든 몸을 이끌고 또다른 정신과를 찾아 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불편함이 다른 환자들도 최윤희님과 비슷한 길로 이끌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단 한 명의 환자라도 제도가 그렇게 이끌어서는 되지 않을 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녀의 죽음이 많은 신체적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다른 환자들의 행복을 지키는 초석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가 말하던 행복이 세상 모든 환자들에게 바이러스처럼 전파되었으면 좋겠다.

편안한 곳에서 고통 없이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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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워낙 흔하게 경험하는 일이다만...
가끔 버릇 없이 구는 아이들이나 진료실에서 심하게 우는 아이들의 보호자가
"울지 마! 그러면 주사준다." 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서 진료를 하는 것은 의사들의 몫이다. 보호자의 몫이 아니다.
그렇지만, 병원에서 운다고 주사를 주지는 않는다.

버릇 없는 아이들을 혼내 주는 일은 부모의 역할이지 결코 의사나 그 외 병원 직원의 일이 아님을 좀 알아 주면 좋겠다.
왜 부모는 혼을 내 주지 못하는 아이에게 병원에서 주사를 준다고 겁을 주는가?

비슷한 경우로,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예의없이 구는 아이를 야단칠 때... 
"너 그러면 저 아저씨가 혼 내 준다."라는 식으로 아이를 겁주는 부모가 있다.
난 이런 부모를 보면, 그 부모를 혼내 주고 싶다.


사례 2. (어느 다른 정형외과 선생님의 트위터에서 옮긴 글)

진료실에 들어온 아이가 울고 있으니까...
"00야, 울지 마, 엄마가 선생님 혼 내 줄께..." 라고 얘기하였단다.
진료실에 들어오면 아이가 겁 먹는 것은 당연한 일, 우는 일도 흔한 일인데...
그렇다고 의사가 부모에게 혼나야 하나? 

이쯤 되면 그 부모가 혼나야 하는 경우가 아닌가?
연세가 지긋한 편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그 보호자보다는 나이도 많은 선생님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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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 퇴원했던 환자를 진료한 것은 어제였다.

어제 새벽에는 응급환자가 있어서 잠을 잘 못 자고 몹시 피곤한 상태였지만, 나름대로 어제의 진료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진료실에 들어오셔서 반갑게 인사하고,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지난번 사진과 비교해서 설명도 해 드렸다.

물론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해 드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구차하게 변명을 하자면, 요즘은 필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있는 모니터에 영상이 뜨기 때문에 꼭 사진을 보고자 하는 분이 아니라면 그냥 말로만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셔야 하는지도 설명을 했고... 앞으로는 뭘 조심해야 하는지도 설명을 해 드렸다. 그리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오늘 오전에 그 환자의 보호자(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진료로 인해서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내가 환자를 너무 보기 싫어 하는 듯 하다고 한다. 설명도 못 들었다고 했다.

어머님(환자)께 충분히 설명하고 만족하고 나가시지 않았냐고 하니까, 그건 어머니가 그렇고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왜 진료 할 때 궁금한 것을 물어보지 않았냐고 하니까 어머니 계신데, 어머니께서 말씀을 다 하고 계신데 어떻게 물어보냐고 한다.

그럼 나는 언제 어떻게 이 보호자를 만족시켜야 하는걸까? 진료실에서는 아무 질문도 없었고, 환자는 웃으면서 나가셨는데... 따로 보호자를 불러서 설명을 해야 하나? 환자에게 비밀로 해야 할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원인이 어찌되어서 경과가 어찌되었든 불만을 가지신다면 분명 내게 잘못이 있었겠지? 물론 그렇지 않은 막무가내같은 환자나 보호자도 참 많다만, 이 보호자는 그렇지는 않았으니...

 

오늘은 오랫만에 다시 이 영화나 한 번 봐야겠다.

아담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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