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참 편리한 세상이 왔다.
내가 궁금해 하는 정보는 간단히 검색어를 입력하면 전문가 수준의 검색이 모두 가능하니까 이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이런 정보의 발전은 의사들에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어느 신경통 환자 이야기

실제로 심한 신경통 환자의 예를 들어 보자.
통증의 조절을 위해서 내가 에나폰과 테그레톨이란 약을 환자에게 처방했다면...
약 봉투에는 환자가 처방받은 약물들이 적혀 있다.
무슨 약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약 이름을 쳐 본다면...
에나폰은 항우울제로 분류되어 나올 것이고,
테그레톨은 항경련제(간질 약)로 분류되어 나올 것이다.

이 무슨 경우인가?
신경통으로 병원을 갔더니 왜 나를 우울증 환자로 만들고 간질 환자로 만든단 말인가?

환자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울트라셋이라는 진통제를 처방했다면...
환자는 검색을 해 본 후 자신을 암환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암성 통증에 사용하는 약이라고 적혀 있을테니까...)

나는 이런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이러저러한 약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처방한다고 미리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두통 환자들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런 설명은 꼭 필요하다.


하나하나 짚어 줄 수는 없는 복약안내서, 그리고 복약지도, 그 후폭풍...

그런데, 약국에서 복약지도라는 명분으로 약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이, 궁금증에 대해 처방을 한 의사에게 문의도 없이 무성의하게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약 설명을 프린터해서 나눠 주는 경우도 보았다.
이 설명서에는 친절하게도 약의 사진까지 나와 있다.

환자들은 꼼꼼히 설명서를 읽은 후 콩 빼 먹듯이 자신이 먹고 싶은 약만 골라서 먹기도 한다. 

그러고선 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약을 처방했냐고 따지거나 또는 약을 먹어도 전혀 낫지 않는다고 불평도 한다.
어느어느 병원에서는 이렇게 약을 처방하더라고 카페같은 곳에 공개를 하기도 한다.


Rapport란? 그리고 위약(placebo)이란?

인간간의 관계 형성을 우리는 rapport라고 부른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 형성이 잘 된 경우에는 밀가루를 먹어도 병이 나을 수 있다.
이것을 위약효과라고 한다.

무성의한 복약지도와 정확하지만 일반적인 약품 정보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이제 어떻게 rapport를 형성해야 하나?
과거에 약 하나하나를 물어 보면서 혼자 조절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환자들에게는 가루약으로 처방을 내리곤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하면 뭔가를 숨기는 의사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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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 (혈관이 막히는 뇌졸중)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혈전성 뇌경색증 (혈관 한 부위에 점차 찌꺼기가 쌓이면서 발생)
2. 색전성 뇌경색증 (심장이나 경동맥 증에서 생긴 찌꺼기가 떠돌아 다니다가 작은 가지에서 막힘)

오늘 아침에 근처 내과의원 원장님으로부터 환자를 의뢰한다는 전화가 왔다.
갑작스런 팔다리의 마비 증상으로 내원한 할아버지인데, 뇌졸중 의심하에 의뢰한다고... 그리고, 구급차로 후송하려고 했으나 거절하고 그냥 걸어서 출발할만큼 고집이 센 분이시라고...

환자를 진찰하니 약간의 위약감이 있지만 거동은 가능한 상태였으며, 역시나 고집이 만만치가 않았다.
완강히 거부하는 환자를 설득해서 MRI를 촬영하였는데...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이 뇌경색이 온 부분이다.

이 사진 외에도 다른 부분에 좌우 양측에 걸쳐서 두 군데의 뇌경색 소견이 보였는데, 이런 경우 심장에서 떨어진 혈전이 다발성으로 머리에 가서 막혀 버리는 색전성 뇌경색증을 강력히 시사하는 소견이 된다.

추가로 심장 검사, 목 혈관 검사도 받아야 하고, 반드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막무가내로 집으로 갈 것을 고집하고 계신다.

참으로 난감한 경우이다. 병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해 드려도, 완전히 마비가 오면 본인과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고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로 거부하시니 이거 더이상 나로서는 방법이 없다.

마지막 방법으로 단골의사의 힘을 빌어 보기로 했다.
오랜 기간동안 이 환자를 돌보시다가 오늘 내게 의뢰해 주신 동네 의원 원장님 생각이 났다.

일단 환자분께는 원래 의뢰해 주신 병원에서 치료받으시라고 설명하고 그 병원으로  돌려 보낸 후, 원장님께 곧장 전화를 했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환자분을 다시 돌려 보내 드리니까 한 번 설득해 보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내 뜻을 이해하신 원장님께서는 직접 설득해서 꼭 우리 병원으로 다시 보내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못 해 낸 일을 틀림없이 해 주시리라 믿는다.

오랜 기간 환자들 근처를 지켜 주시는 수없이 많은 동네 의원의 원장님들이 계셔서 대한민국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작은 병에도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대학병원들만을 선호할까?

이웃 원장님과 함께 전개하는 환자 입원시키기 총력전에 반드시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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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불안증후군 (Restless leg syndrome)의 진단은 참 쉽다.

1. 다리의 감각 이상과 움직이고 싶은 기분
2. 안절부절못함
3. 증상의 악화가 움직임에 의해 잠시 완화됨
4. 주로 저녁이나 밤에 악화됨

이런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주로 다리에 나타나지만, 팔에도 나타날 수도 있고, 드물게는 팔에만 나타날 수도 있는 병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이 병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서 몇 년 간 엉뚱하게 많은 검사를 통해서 진단을 받지 못하고 진통제만 먹으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늘 내원한 남자 환자는, 7년간 다른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다가 한 달 쯤 전에 나를 찾아와서 프라미펙솔이라는 약을 복용 후 증상이 완전히 사라져서 하지불안증후군으로 확진한 환자인데...

신기하게도 이 환자는 모 대학병원에서 하지불안증후군에 가장 유용한 검사인 수면다원검사까지 시행했으나 진단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수면다원검사로 확인되는 경우가 80% 정도니까 검사에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도 20%나 된다.

어찌되었든 이 환자나 다른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내가 처방한 약을 먹고 환자가 나아졌으니 참 다행스럽고 뿌듯한 것은 사실이다만, 이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는 두 가지 갈등이 있다.


첫 번째 갈등
교과서적으로는 하지불안증후군의 치료약은 그야말로 증상에 대한 치료일 뿐 병의 경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므로 확진될 때 까지는 환자의 수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우 약물을 사용하지 않도록 적혀 있다.
그러나 나는 약물을 먼저 사용 후 그 효과를 보고 지속적인 약물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데...

과연 환자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수면에 얼마나 지장을 받는지를 교과서의 저자는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내가 하는 의료행위가 적절한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가 있다.

1주일 처방 후 밝아진 환자의 얼굴을 보면, 1주일간 잠을 푹 잘 잤다고 기뻐하는 환자들을 보면 잘 한 치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약간은 교과서와 어긋난 느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 병원에는 (비록 80%의 진단율밖에 안 되는 검사지만) 수면다원검사도 시행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애써 갈등을 잠재워 본다.


두 번째 갈등
대개의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들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다른 병원에서 엉뚱한 치료를 받던 분들이다.

많은 경우에 이전의 다른 치료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제야 올바는 치료 방법을 찾았다는데 대해 기뻐 하시지만, 가끔은 다른 병원의 치료에 대해 원망을 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런 환자의 원망을 십분 이해한다만, 다른 병원 선생님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나하면, 아직까지 다른 과 선생님들께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병인 관계로 치료에 반응이 없을 때 어디로 어떻게 의뢰해야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테니까... 그리고 나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을테니까...

이런 경우는 잘못 진단한 선생님들의 문제보다는 그동안 이 병에 대해 다른 주위의 선생님들께 설명을 하지 않은 우리 신경과 의사들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거 참 환자분들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갈등이 생기는 경우이다.

그저, "이 병은 제일 마지막에 본 사람이 명의가 되는 병입니다."라고 얘기하고 환자와 함께 한바탕 웃고 마는데, 뭐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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